705년 12월 16일 측천무후 사망
악녀에서 탁월한 정치가로
705년 12월 16일 80살이 된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이하 무후)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
어린나이에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하여 태종의 죽음과 함께 비구니가 되었으나 고종(태종의 아들)의 총애를 업고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비빈과 황후, 반대파를 제거하고 황후가 되었으며 고종의 병이 들자 23년간 실질적으로 당을 통치했다. 고종이 죽고 자신의 장남인 중종이 뒤를 이었으나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차남 예종을 즉위시켰다. 그러나 실권은 무후가 쥐고 있었으며 예종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무후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으며 실권을 쥐고 정사를 좌지우지 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65세 되던 해(690년) 왕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 국호를 주(周)로 고쳐 15년 동안 통치했다. 만년이 되어 폐위했던 중종을 다시 태자로 삼았고(698년), 2년 후 반대파의 모반으로 중종에세 양위하고 물러나 지내다가 그해 12월 세상을 떠났다.
측천무후를 기리는 무자비(無字碑)
무후의 유언대로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
무후는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인재를 중용했고 각종 사회개혁을 단행했으며 신라까지 영향력을 미칠만큼 국력도 신장시켰다. 무후의 정책으로 당은 귀족 중심 사회에서 문인관료 중심 사회로 전환되었고 당은 전성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치적은 왕위를 찬탈하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다는 이유로,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으며 오로지 악녀로만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재에는 무후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당을 기반위에 올려놓은 여성정치가라는 평가도 늘고 있다.
● 참고문헌 및 자료
여왕의 시대(바이하이진, 김문주 역, 미래의창, 2008년)
악녀의 세계사(김향, 가람기획, 2005년)
중국사 강의(저우스펀, 김영수 역, 돌베게,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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