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주의(Mounroe Doctrine)
1823년 12월 2일 먼로 대통령이 의회 연두교서에 발표한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유럽과 아메리카는 정치체계가 서로 다르고 별개의 지역으로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4가지 원칙을 천명했는데 아래와 같다.
① 미국은 유럽 열강의 국내문제나 열강 사이의 세력다툼에 개입하지 않는다.
②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기존 식민지와 보호령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③ 장차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 건설을 엄금한다.
④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의 어떠한 나라라도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미국의 5대 대통령 먼로
19세기 초, 남미와 중남미에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생겨나자, 영국과 미국은 스페인이 이 지역에 대해 지배권을 다시 행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영국은 이 신생국과 제한없이 통상하기를 바랬고 조기 캐닝 영국 외무장관은 라탄 아메리카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미 ․ 영 공동선언을 제의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먼로는 이 제안에 호의적이었고 제퍼슨과 메디슨 전 대통령도 동의했다. 그러나 존 퀸시 애덤스 국무장관은 독자적으로 미국의 정책을 공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미국의 국력으로 먼로주의는 실현될 수 없었다. 미국의 국력은 유럽 열강에 미치지 못했고 열강들도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미국은 영국이 다른 열강들을 아메리카의 침략자들은 견제해 주기를 바랬다. 30년 동안 먼로주의는 유럽 열강들의 활동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1833년 영국이 포틀랜드를 점령해도 미국은 항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1845년과 1848년에 영국과 스페인이 오리건, 캘리포니아, 유카탄 반도에 진출하려 하자 폴크 대통령은 먼로주의를 재천명하고 영국과 스페인에게 경고했으며, 남북전쟁 당시 멕시코의 프랑스 괴뢰왕국을 철수시키기 위해 리오그란데에 군대를 보내어 프랑스사 철수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1870년 이후 먼로주의는 점점 확대고 미국의 국력이 커지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악질적이고 상습적인 비행을 저지를 경우,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국가에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루즈벨트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와 실정으로 피폐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불만을 미국이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내세웠다. 루즈벨트는 재임기간 내내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 자주 개입했으며 특히 카리브 연안국가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1930년대 이래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개별 국가들 및 미주기구(OAS)와 협의해, 미국의 대(對) 라틴아메리카 외교정책을 수립해왔다. 아직도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자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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