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3월 16일 독일, 베르사유조약 파기 선언
2차 대전의 전조(前兆)
“하이, 히틀러!”를 외치며 나치에 열광한 독일 국민들
1차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들은 파리 강화회의를 열어 전후처리를 논의하였고, 베르사이유 궁의 거울의 방에서 협정을 체결하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 ‘민족자결주의’가 공표되어 식민지 상태의 국가들도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했다.
“민족자결주의”에 식민지 국가들이 희망을 품었지만
파리강화회의는 승전국들의 전리품 나눠먹기에 지나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윌리엄 오르펀 작)
승전국은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데만 집중하였고 패전국에 무거운 짐을 지웠다. 특히, 패전국의 중심이었던 독일에게는 징벌적 보복을 가했다. 독일은 영토 일부와 해외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고 군비를 제한당했으며 엄청난 전쟁 보상금을 물어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 국민들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히틀러는 경제난과 패전의 절망에 허덕이던
독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경제대공황 발생(1929년)으로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히틀러를 필두로 한 나치가 정권을 차지하였다. 10여년 동안 통제와 경제난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들은 “베르사유 조약 타도”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나치에 열광하였다. 1935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하고 군비 증강에 돌입하였으며, 세계는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
● 참고문헌 및 자료
통세계사 2(김상훈, 더산에듀, 2009년)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푸른나무, 2008년)
우리사회는 진실에 가치를 부여하는가?(6.15광장, 2007년 11월 1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진화론(칠곡신문, 2011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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