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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오늘의 역사 2

고려의 목숨이 다하다

by hwawoon 2013. 9. 21.

 

  

1374년 9월 21일 공민왕 시역

 

고려의 목숨이 다하다

 

 

 

  500년 고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은 왕건과 공민왕이 아닐까. 한 사람은 고려를 세웠고, 한사람은 고려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왕건의 이름은 영광으로 남았지만 공민왕은 한국사(史)에 아로새겨진 안타까움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

 

 

 

  원나라(元)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시절, 공민왕은 어린 시절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형 충혜왕(고려 28대 왕)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고려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1351년). 그의 곁에는 원나라에서 혼인한 원의 공주 노국공주(魯國公主)가 있었다.

 

 

 

 

원의 옷을 벗고 고려왕과 왕비의 옷을 입은 공민왕와 노국공주

반원 개혁 정책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드라마 신의(SBS)의 한 장면

 

 

 

  당시 원나라는 왕위 계승 다툼과 귀족의 부, 한족의 반란, 전염병 등으로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반원 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누이 기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건 기철 일파를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았으며 원의 연호를 폐지하고 황제국을 선포했다.

 

 

 

 

공민왕은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공민왕의 그림으로 알려진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홍건족와 왜구의 침입에 시달리면서도 개혁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공민왕은 사랑하는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려 바라보며 울며 지냈고 왕비를 추모하는 사찰을 짓는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원성을 샀다.

 

  이후 미소년을 뽑아 자제위(子弟衛)를 만들어 시중들게 했는데 자제위 홍륜이 후궁 익비와 간통하자 내관 최만생이 이를 공민왕에 고했다. 공민왕을 홍륜과 익비(益妃)를 처벌하는 대신 사실을 아는 자를 죽여 덮으려 하자 홍륜과 최만생이 왕을 시해했다.

 

  공민왕의 죽음을 고려의 죽음이었다. 공민왕 사후에 세 왕(우왕, 창왕, 공양왕)이 등극했으나 꼭둑각시에 불과했다. 공민왕 서거 18년 후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조선이 등장했다(1392년).

 

 

 

 

    

참고문헌 및 자료

장콩선생님과 함께 묻고 답하는 한국사카페(북멘토, 2008년)

드라마 신의(SBS,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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