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 19일 파쇼다 사건 발생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의 충돌
19세기 유럽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를 철저히 유린했다.
서구열강의 아프리카 착취를 풍자한 만평
당시 식민지 전쟁에 뛰어들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었으며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이 치열했다. 영국은 이집트의 카이로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연결하는 종단정책(縱斷政策)을 추진했고 프랑스는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를 이으려 횡단정책(橫斷政策)을 펴고 있었다.
영국의 종단 정책 풍자화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던 두 열강은 수단의 파쇼다에서 충돌했다. 1989년 7월 프랑스가 먼저 파쇼다를 점령했다. 2달 뒤인 9월 19일 영국군이 파쇼다에 도착해 프랑스의 철수를 요구하여 양측은 팽팽한 대치 상태로 들어갔다. 1년 뒤인 1989년 나일강와 콩고강을 경계로 하는 데 합의했다.
파쇼다 사건
● 참고문헌 및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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